25.05.14 11:47 | 최종 업데이트 25.05.14 11:47 | 여경수(ccourt)
지난 주말, 고등학교 동창들과 함께 서울대학교를 다녀왔다. 이번 모임은 서울대학교에서 연수를 받게 된 한 친구를 축하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 2022년에 개통된 신림선을 이번에 처음 이용했는데, 1호선 대방역에서 하차한 뒤 신림선으로 갈아타 관악산역까지 이동했다.
예전에는 서울대에 가려면 2호선 서울대입구역에서 내려 다시 버스를 타야 했지만, 관악산역에서 내리니 서울대 정문까지는 도보로 5분 남짓에 불과했다. 접근성이 훨씬 좋아진 셈이다.
▲박종철센터 박종철동상 ⓒ 여경수
우리는 먼저 녹두거리를 천천히 걸었다. 최근 박종철기념관(박종철센터)이 건립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던 터라, 그곳을 찾아가 보기로 했다. 4층 규모의 건물 가운데 1층은 공원처럼 꾸며져 있었고, 중심부에는 박종철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전두환 정권 시절, 고문이 일상화되어 있던 시대였다. 박종철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을 당하면서도 경찰이 원하는 정보를 끝내 말하지 않았다. 경찰이 추궁했던 대상은 그의 선배 박종운의 행적이었다.
▲박종철센터의 상설전시관 ⓒ 여경수
얼마 전 박종운의 이름이 언론에 다시 오르내리는 것을 보았다. 그는 김문수와 함께 정치 활동을 이어왔으며, '국민의힘' 계열 정당으로부터 여러 차례 공천을 받았으나 번번이 낙선했다. 그러다 윤석열 정부 들어 김문수가 장관에 임명되면서 박종운은 그의 보좌관으로 공직에 복귀했고, 현재는 김문수의 대통령 선거운동을 돕고 있다고 한다.
박종철의 동상을 바라보며, 그 시절의 청춘과 신념, 그리고 지금의 현실 사이에 흐르는 시간의 궤적을 떠올리게 된다. 그와 함께 젊은 시절을 보냈던 이들 또한 어느덧 60대를 맞이하고 있다. 1987년 헌법은 전두환 정권의 몰락과 시민 항쟁의 결실이었다. 우리나라 헌정사에서 박종철의 이름이 반드시 기억되기를 바란다.
▲서울대학교 박물관에 전시된 광개토대왕비 탁본 ⓒ 여경수
이후 우리는 서울대학교 박물관을 관람했다. 박물관에는 광개토대왕비의 탁본이 전시되어 있었다. 휴일이어서 그런지 서울대학교를 견학 온 중·고등학생들이 많았다. 그들이 박물관뿐 아니라 박종철센터까지 함께 찾았더라면 더욱 깊은 인상을 남기는 방문이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관악산 둘레길을 따라 걸으며, 봄날의 정취를 온몸으로 느끼는 시간도 가졌다.
▲서울대학교 정문 <샤>의 문양 ⓒ 여경수
숙소에 짐을 맡긴 뒤 우리는 저녁식사를 위해 샤로수길로 향했다. 샤로수길은 서울대입구역 인근에 위치한 거리로, 다양한 식당들이 밀집해 있다. 서울대학교의 상징 '샤'와 신사동 가로수길의 이름을 결합한 이 거리에는 종로의 고즈넉한 분위기나 강남의 화려함과는 또 다른, 젊고 독특한 감성이 흐르고 있었다.